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한영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암살 전개과정 == [[파일:118690111.jpg]] * '''1996년 11월 중순경''' 40대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가명으로 이씨의 이전 주민등록지인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사무소에서 이씨의 주민등록등초본 2통을 발급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남성은 "이한영이 밀린 카드값을 갚지 않아서 채권 확보에 필요하다" 면서 주민등록등본을 뗐다고 밝혔으나 경찰 확인 결과 이 남자가 근무한다는 서울 종로의 사무실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과 다르게 당시 국내에서는 누구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에서는 간첩들의 활동을 통해 남한사람의 신원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위조하여 불법적으로 여권을 발급해 입국할 수 있었다. * '''1997년 1월 21일 화요일''' 이한영의 대학선배 김씨는 이씨의 주소지를 분당 본인 집으로 옮겨주었다. 이씨는 1996년 여름 수기를 출간하자마자 안기부의 안가에서 나온 뒤 자신의 과거 주소지에서 실제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자 김씨의 동의를 얻어 주소지를 옮겼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뛰어난 간첩이라도 이한영의 정확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파일:165623.jpg]] * '''1997년 1월 31일 금요일 낮''' 서울 말씨를 쓰는 한 남성이 이한영이 자서전에 흘린 정보를 그대로 이용했다. 서울 북창동 D심부름센터에 전화하여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서 "만나야 할 사람이다. 이름은 이한영이고, 62년생 전후인데 주소지를 알수있나? 회사가 부도가 나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있고, 수인번호는 1421번이다. 이한영씨의 주소를 찾아달라. 교도소를 갔다온 적이 있고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이다." 라고 말한뒤 각각 오전 10시 55분경, 그리고 오후 3시경 두차례에 걸쳐 하나은행 서울 흑석동 지점에서 40만원, 그리고 서울의 또 다른 은행에서 5만원을 송금했다. 심부름센터측이 이씨의 주소를 가르쳐 주자 이씨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봐 달라고 했으나 심부름센터측과 의뢰비가 맞지 않아 공중전화로 여덟차례나 협상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전 10시 30분∼오후 4시까지 심부름센터로 걸려온 핸드폰 전화 011(1통), 017(2통)이 각각 다른 번호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것으로 볼때 용역에 대한 의뢰과정에서도 전화, 송금 등을 조직적으로 나누어 행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영의 주민등록증이 갱신된이후 열흘만에 간첩들의 활동이 있었다는것을 미루어볼때 피격 최소 4개월전부터 꾸준히 이한영을 암살하기 위해 간첩들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